해당 인터뷰 내용은 2018년 9월 11일에 있었던 독일 패션 잡지 032c와 구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렉산드로 미켈레의 인터뷰 내용을 번역한 것이다.
알렉산드로 미켈레가 구찌와 패션계에 가져온 충격은 외계 침공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아주 빠르고, 독특하게 그는 패션계를 장악했다. 그의 만화경 야생동물 자료들(kaleidoscopic menagerid of references), 앤틱 예술품, 장례 관련 공예품, B급 영화 등 방대한 수집품들은 거의 대부분 충동 구매에 의한 것이었다. 그가 구찌에 갓 임명된 CEO 마르코 비자리를 만난 것은 2014년 그의 집 분더캄머(Wunderkammer/'놀라운 것들의 방'이라는독일어. 한 개인의 취향을 반영한 진귀하고 놀라운 컬렉션을 의미함)에서였다. 그 자리에서 비자리는 구찌의 핸드백 디자이너를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하겠다고 결심했다.
그의 결정은 미켈레를 비롯한 패션계 전체를 놀라게 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구찌의 최전선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그가 새로운 얼굴이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본지의 Michael Ebert와 Sven Michaelsen은 로마에 있는 미켈레의 집을 방문해 허영의 짐(the burden of vanity), 대칭의 공포(the terror of symmetry), 사물에 온전히 몰입하는 믿음(the faith of being devoted to objects)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켈레 당신은 이전에 "패션은 늙은 여자가 임종을 앞둔 것과 같다. 그리고 우리의 몫은 그녀가 죽도록 놔두는 것이다." 라고 말했어요. 왜 패션 디자이너는 패션의 죽음을 반겨야 하죠?
그렇게 함으로써 그녀(늙은 여자)가 다시 부활할 수 있으니까요. 패션은 마치 두꺼운 벽으로 둘러싸인 교도소에요. 그리고 나의 일은 패션의 자유분방함을 회복시키는 것이죠. 훌륭한 패션은 90년대에 이미 다 나왔어요. 2000년대 이후 패션이 했던 일이라고는 최고의 만족감을 선사하는 정도였죠.(구매하는 소비자에게 충분한 만족감을 준다는 의미인 듯하다)
마케팅 디렉터가 디자이너 위에 서서 "현재 아시아 지역에 핑크 색상 수요가 높으니 올 봄은 핑크를 테마로 가자고."라고 말해요. 마케팅이 디자인 보다 앞에 서서 디자이너에게 이번 컬렉션은 이래야 한다느니 하는 것은 정말 질색이에요. 패션이 우선이고 그 후에 어떻게 판매할지 생각해야 해요. 그리고 그 반대가 되는 순간 패션은 사망해요. 내가 죽여주는 컬렉션을 디자인 할때는 마케팅과 세일즈 전략 어느것도 염두에 두지 않아요.
무엇이 당신을 차별화하나요?
패션은 모두가 똑같은 모습을 한 거품과도 같아요. 읽고 먹고 일하고 말하는 것 모두 패션과 관련된 것들이에요. 가끔 몇 년에 한번씩은 이런 틀에 박힌 형식을 거부하는 이들이 나오긴 하지만요. (남들과 차별화되기 위해)내가 주위의 다양한 것들로 실험을 할 때면 마치 심리치료를 받는 느낌이에요.
다양한 조합 속에서 새로운 것이 탄생하면 마치 제 안의 코르크마개가 뻥 하고 터지면서 다양한 문화적 이미지와 상징들이 충돌하는 것 같아요. 저의 패션은 이런 뒤섞임(jumble)을 근간에 두고 있어요. 이것을 절충주의(eclecticism)라고 부를 수 있겠지만 저는 아름다움으로 점철된 과일 샐러드를 준비하는 과정이라 말하고 싶네요.
당신의 디자인은 성별을 구분하지 않습니다.(남녀 모두 착용 가능하다)
만약 화성인이 지구에 와서 남성성(masculinity)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할 건가요?
"미안해 친구들, 사람 잘못 짚었어."라고 말하는게 최선이겠네요.
예전에는 명확히 남녀의 성별이 나뉘었지만 더이상 그렇지 않아요. '모호함'이 '명확함'을 대체한 것이죠. 마치 화가의 팔레트 처럼요.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자신을 대표하는 색을 선택할 수 있어요. 저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그들의 성찬식에서 소녀처럼 긴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 꽃을 꽂았어요. 몇 년간 로마의 한 박물관에서 여성의 얼굴과 몸을 묘사한 동상을 지나쳤던 적이 있었는데 그 동상의 이상한 점은 남성 성기가 달려 있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저는 자웅동체겠거니 생각했어요. 그러던 어느날 문득 동상 앞에 멈춰서서 안내판을 읽었는데, 그 동상이 미의 여신 비너스의 동상이라는 거에요.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화에서는 미(beauty)란 남성성과 여성성의 조화를 통해 탄생한다고 믿었다더군요. 그리고 가톨릭이 이 유산을 불과 칼로 없애버렸죠. 저의 패션은 이 유산의 부활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90년대 파산 직전의 구찌를 기사회생시킨 텍사스 출신(텍사스가 가지는 보수적이고 터프한 이미지 때문에 언급한 듯) 디자이너 톰 포드(Tom Ford)는 섹시함이 여성복의 최우선 순위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 의견에 동의하나요?
톰은 여전히 최고에요. 하지만 '섹시함'이라는 말이 저에게는 좀 촌스럽게 들리네요. 즐거움으로 가득하고, 요염하게 웃음짓고, 우아하게 움직이고, 재미있게 말하고, 재기발랄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고, 대칭의 공포에 저항한다면 섹시함은 저절로 따라오죠.
"대칭의 공포"라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요?
진정한 미(beauty)란 불균형(asymmetry)을 바탕으로 해요. 하지만 우리는 균형적인 것이 더 아름답다는 믿음으로 불균형을 배척해요.
규칙적이라는 말은 지루함과 동일한 의미에요. 저는 매력적이지 못한 모델들을 기용한다고 비난받고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은 여전히 90년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캐스팅에 있어 저의 기준은 모델의 얼굴과 몸에서 풍겨오는 이야기(story)에요. 그 이야기는 그 사람을 특별하게 만들고 그것이 모두가 자신만의 고유성을 가지고 특별해지기를 원하는 시대상과 일맥상통하죠. 톰(Tom Ford)이 기용했던 모델들은 금발 미녀들이었죠. 하지만 우리는 인스타그램으로 대표되는 시대에 살고 있어요. 요즘에는 소속사 대신 인스타그램 계정만 있으면 사진 어플로 누구나 영화배우같은 멋진 모습으로 변할 수 있어요. 독보적인 아름다움은 더이상 소수의 축복받은 이들의 전유물이 아니에요. 그런건 이미 사방에 널려 있어요.
당신은 올해 45살이에요. 인스타그램 같은 미디어를 자주 사용하나요?
저는 이것에 다소 회의적이지만, 세대차이라고 생각해요. 저희 세대때는 SNS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그것에 휘둘리는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그 반대죠. 인스타그램을 사용할때면 80살이 된 기분이에요.
톰 포드가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었을 때 그는 모든 직원들에게 검정 펜만 사용할 것을 주문했어요. 만일 누군가가 노란색 펜을 사용한다면 그 즉시 사진 찍혀서 톰 포드에게 전달되었죠. 당신도 그런 스타일인가요?
아뇨, 저는 파괴(breaches)가 완벽한 아름다움(flawless aesthetics)보다 더 많은 영감을 준다고 생각해요. 지금 저의 옷차림을 보면 두꺼울 울 니삭스에 샌들을 신고 있죠. 저는 마치 몇 년은 입은 것처럼 낡아 보이는 옷이 좋아요. 그래서 새 옷도 빈티지처럼 보이도록 몇번이고 세탁하죠. 항상 옷을 다릴 때면 수트케이스에 며칠 구겨 넣어진 것처럼 보이도록 다림질을 해요. 다른 사람들 옷도 예외는 없어요.
(알렉산드로 미켈레의 수집품)
(알렉산드로 미켈레의 수집품)
당신의 컬렉션에 대해 설명 해주세요. 당신은 질 들뢰즈, 윌리엄 블레이크, 노발리스, 롤랑 바르트, 마르틴 하이데거, 로저 카이와 같은 저명한 학자들의 사상을 인용하고 패션에 투영시키는데요, 그 이유가 당신이 고상하기(highbrow)때문인가요, 아니면 당신의 파트너 조반니 아틸리의 영향 때문인가요?
* 조반니 아틸리는 도시계획학 교수다.
조반니는 시나 철학 에세이, 심지어 만화 스누피 만큼 패션 또한 충분히 쉽게 자신의 생각을 투영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사람이에요. 그는 "패션에는 사회학이 녹아들어 있다."고 말했죠. 당신은 패션을 통해 특정 정치 이슈에 찬성 혹은 반대를 할 수 있어요. 이것 또한 패션의 힘이죠.
당신의 남자친구(조반니 아틸리)는 패션에 관심 있나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제가 본것 중 가장 작은 옷장과 가장 큰 서재를 가진 사람이었어요. 그의 주위에는 소위 '진짜배기' 지식을 가진 시인과 학자들로 가득했죠. 그들은 패션을 거부하고 저렴한 기성복만 구매했는데, 이것은 그들 방식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였죠. 저는 반 패션(anti-fashion)또한 패션이라고 그들과 설전을 벌였어요. 패션에 무심한 듯 보이도록 노력하는 것은 허영심이 뒤집어진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아침 일찍 일어나 소젖을 짜는 농부가 아닌 이상에야 자신의 외관에 신경쓰지 않는 사람은 없어요.
허영이란 참 복잡한 주제네요. 당신은 외모에 신경쓰지 않는 사람들이 부럽나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요.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 거울속의 자신을 보면 정말 절망적이죠. 반대로 허영은 제가 아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에요. 허영은 세상 사람들이 남들보다 좀 더 멋지고, 그로 인해 타인에게 영감을 줄 수 있도록 조장하는 녀석이죠. 허영이 없었다면 세상이 이렇게 발전하지 못했을 거에요. 어느 날 이탈리아 카피톨리니 박물관에서 열린 독일의 미술 고고학자 요한 요하임 빈켈만의 300주기 기념 전시회에 갔는데, 그곳에 있었던 고대 유물의 아름다움에 넋이 나갔죠. 전시회장에서 삼 일 동안 캠핑 하면서 둘러 보고 싶을 정도였어요. 특히 미(beauty)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표현한 빈켈만의 글은 저에게 큰 영감을 주었죠.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는 것은 치유와 같지만 동시에 우리 자신의 불완전함에 실망하는 쓰라린 고통이기도 해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책임이 막중한 자리입니다. 당신은 멘탈이 강한 편인가요?
네, 저는 다른 이들의 생각에 휘둘리지 않아요. 만약 2019년 구찌가 저를 해고한다 해도 별로 놀라지 않을걸요? 앞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아요. 저는 꽤 구식인 사람이에요.
패션 디자이너라면 미래의 유행을 미리 예측해야 하지 않을까요?
놀랍게도, 저는 예측할 수 없어요. 저는 마법사가 아니거든요. 제가 아는 유일한 것은 현재 내가 무엇을 원하느냐에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들이 마치 모든것을 다 예측할 수 있다는 듯 행동하죠. 하지만 저에게는 그런 가식의 마스크를 쓰고 내것인양 행동하는 것은 벅찬 일이에요. 40대가 되면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삶을 살고 싶어져요.
당신은 이탈리아 로마 외곽 지역인 몬테 산토(Monte Santo)에서 자랐어요.
일전에 당신은 당신의 유년기가 라나 터너와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같다고 했는데요.
*라나 터너: 미국 여배우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이탈리아의 수도사
저의 아버지는 알리탈리아(이탈리아 항공사)의 정비공이었지만 조각, 음악, 시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죠. 아버지는 십여개가 넘는 악기를 다루었고 시와 글을 쓰셨죠. 공식적으로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살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은둔자처럼 본인 스튜디오에서 보냈어요. 그리고 항상 시계 없이 지내고 긴 수염과 배꼽까지 오는 머리칼을 가지고 있었죠. 마치 무당 같았어요. 종종 새에게 이야기도 했어요. 어느 날 아버지 생일에 제가 휴대폰을 선물로 드렸는데 절대 사용하지 않더군요. 한번은 아버지에게 제 생일이 언제인지 물어 보았는데, 기억 못하더라고요. 하지만 아버지는 제가 태어났을 때 세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분명히 기억했어요. 아버지가 아닌 다른 사람은 상상할 수 없을 거에요. 왜냐하면 그는 제가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떤 길로 가던지 개의치 않고 항상 저를 응원해 주었거든요.
아버지는 왜 시계 없이 사셨나요?
아버지는 몇 시간 몇 분 이렇게 시간을 쪼개어 살아가는 삶을 거부했어요. 그래서 아버지와 약속을 잡고 만나는게 거의 불가능했죠.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몇 달 전 그는 마치 성인(Saint) 같았어요. 죽는다는 사실에 전혀 개의치 않아 보였죠. "안녕"이라는 가족들의 작별인사에 아버지는 "너희들과 수많은 날들을 함께해서 정말 행복해."라고 답했어요. 하지만 저는 아버지와 많은 날들을 함께하지 못해 아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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