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혈쌍웅은 영웅본색 마크의 다른 이야기를 노래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영화다. 세상 두려울 것 없는 거만한 표정으로 쌍권총을 난사하며 적들을 쓸어버리고, 지폐에 불을 붙여 담배를 멋지게 태우는 그 마크 말이다.
첩혈쌍웅의 주인공 아쏭은 영웅본색 마크가 보여주는 '날것'의 매력과 대비되는 음울하고 신중한 인물로 묘사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고 보고 난 후 아래와 같은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영웅본색의 마크가 그때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면?"
"만일 마크가 다른 차원의 홍콩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었다면?"
영웅본색의 마크와 첩혈쌍웅의 아쏭은 서로 다른 영화 속의 캐릭터지만 묘하게 연결되는 지점이 느껴진다. 역시 같은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 주윤발이 남긴 강렬한 인상 때문인가.
감독: 오우삼
주연: 주윤발, 이수현, 엽천문, 증강
스토리는 단순하다.
살인 청부업자 아쏭은 의뢰받은 일을 하던 중 클럽 싱어 제니의 눈을 크게 다치게 만들고, 그 죄책감에 그녀의 곁을 맴돌다 우연한 계기로 사랑에 빠진다. 물론 자신이 그녀의 눈을 다치게 만든 살인 청부업자라는 사실을 숨긴 채.
강력계 형사 이응은 아쏭의 뒤를 쫓던 중 갖은 위험에 노출되고, 급기야 자신의 동료이자 아끼는 후배인 증야까지 잃게 된다. 분노에 휩싸인 이응은 홀로 아쏭을 쫓으며 그를 죽이려 하지만 아쏭의 인간적인 면모에 묘하게 끌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쓰고 보니 스토리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개처럼 살기보단 영웅처럼 죽고 싶었어"
"시험해볼까? 난 항상 만약을 위해 한 발을 남겨두지. 적이나 나 자신을 위해"
영화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리(義理), 그리고 삶을 대하는 아쏭, 이응 그들 자신만의 낭만(浪漫)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 의리니 낭만이니 다 좋지만 영화 속에 묘사되고 있는 이 두 가치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눈에는 다소 억지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게 어때서? 난 이게 좋다고!"라고 외치는 모습은 중국 반환을 앞두고 있던 1980년대 후반 홍콩 사회 곳곳에 퍼져 나간 미래에 대한 어두운 심리를 해소하기 위한 몸부림의 또 다른 표현으로 느껴진다.
가끔 옛 시절, 옛 것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때마다 그 시절 영화를 들춰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땐 그랬었구나, 이렇게 생각을 했었구나...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현실로 돌아온 자신을 발견한다.
세상이, 자신이 처한 현실이 힘들수록 옛 시절, 옛사람을 찾게 된다. 좋았던 시절을 그리워하기도 하고 옛사람들에게 자신의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기도 한다. 그때마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맥아더 장군의 말이 떠오른다. 그래, 다만 사라질지언정 결코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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