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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죽기 전에 보면 좋은 영화

레디 오어 낫(2019)_노란 컨버스와 웨딩 드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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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집안의 남자와 결혼한 여자가

시댁 식구들과 벌이는 살벌하고 이상한 숨바꼭질 스릴러


(이미지 출처: www.imdb.com)

 

개봉일: 2019 / 미스터리, 스릴러 / 94분

감독: 맷 베티넬리-올핀 / 타일러 질렛

출연: 사만다 위빙 / 아담 브로디

 

대개 영화를 보기 전 영화 포스터를 보면서 어떤 영화일까 상상한다. 이 영화의 포스터는 흥미롭다. 불타는 저택 위로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결연한 표정으로 탄띠를 둘러메고 총을 들고 있다. 그녀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 또한 무기를 들고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으나 알 수 없는 그들의 적대감은 신부를 향해 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떠오르는 B급 감성의 포스터는 영화 곳곳에 어떤 재미난 디테일과 반전을 숨겨 놓았을까 궁금증을 유발한다.

 


"그래, 웨딩드레스는 평생 단 한 번만 입는 게 좋을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영화를 시청했거나, 아니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숙지한 상태일 것이다. 그렇다, 부잣집 도련님과 결혼한 그레이스는 신혼 첫날밤 가족의 전통이라는 이름 하에 진행되는 이상한 종교의식에 참여하게 되고, 하필이면 '숨바꼭질' 카드를 뽑는 바람에 꼭꼭 안 숨으면 산 채로 제물이 되는 상황에 직면한다.

 

영화 속 웨딩 드레스는 영국 왕세손비 케이트 미들턴과 할리우드 스타이자 모나코 공비 그레이스 켈리의 웨딩드레스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 우아함과 순결의 상징인 웨딩드레스, 거기에 왕실의 근엄함까지 끼얹어 한 마디로 '있어 보이는' 웨딩드레스를 표현하고 있다. 평민 출신인 케이트 미들턴과 그레이스 켈리가 신분을 뛰어넘어 왕실과 인연을 맺은 것처럼 그레이스 또한 (자세한 설명은 없지만) 평민 출신으로 부유한 가문과 인연을 맺게 된다는 영화 속 설정은 애초에 처음부터 감독이 의도한 이미지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러고 보니 주인공 이름도 그레이스다. 여러모로 흥미롭다.

 

(이미지 출처: www.stylishbrides.com.au)

 

영화 속 그레이스의 의상은 그 색이 순백에서 피칠갑으로 바뀔 뿐 웨딩드레스로 일관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숨바꼭질이 시작되는 무렵 그녀는 웨딩드레스의 긴 밑단을 찢어버리고 하이힐에서 컨버스로 갈아 신는다. 꽤 잘 어울린다. 마치 원래 그렇게 입어왔던 사람처럼. 반면 그녀를 사냥하는 시댁 식구들의 옷차림엔 변화가 없다. 여전히 고상한 슈트와 드레스, 하이힐을 신고 사냥에 나선다. 무기도 예전에 사용하던, 30년도 더 된 '옛것'을 사용할 것을 고수한다. 심지어 석궁과 도끼도 등장한다. 여기서 그레이스와 시댁 식구들 간의 계층적 특성이 엿보여 흥미로웠다. 실용과 전통의 대결이랄까? 그레이스에겐 하이힐보다 컨버스가 편하고 시댁 식구들에게는 컨버스보다 딱딱한 구두와 하이힐이 편하다.

 

(이미지 출처: www.imdb.com)
(이미지 출처: www.imdb.com)


"최소한만 이야기하고 하나에 집중하여 보여준다"

 

영화는 자로 잰 듯한 설정과 화면 구성에 집착하지 않고 심플하게 설명하고, 보여준다. 그레이스의 배경에 대한 설명도 없고, 시댁 식구들이 왜 이런 이상한 전통을 고수하는지에 대해서도 영화 초반 잠시 시간을 할애할 뿐 더 이상 관객을 설득하려 들지 않는다. 심지어 은근히 비중이 높은, 그녀를 사냥하는데 적극 동참하는 하인들에 대한 설명은 일절 하지 않는다. 그냥 그레이스가 이런 엿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남는지에 주목한다. 간결한 스토리, 그리고 그레이스와 시댁 식구들의 의상을 통해 캐릭터 특성을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 이 영화는 모든 것이 단순하다. 그 단순함이 영화가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영화가 되지 않게 만드는 큰 힘이 된다. 반드시 너무 많은 것을 해석하고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다.

 

(이미지 출처: www.imdb.com)

 

(이미지 출처: www.imdb.com)

그레이스의 흡연 장면은 러닝타임 통틀어 영화 초반부와 후반부 단 두 장면이 나올 뿐이다. 그리고 그 느낌은 매우 상반된다. 영화 초반부 결혼식을 앞둔 그녀가 곧 어마어마한 부잣집 며느리가 된다는 설렘과 함께 담배 연기를 빨아들인다. 담배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고상한 상류 사회로 편입되기 전 마지막 자유를 만끽하는 느낌이다. 반면 영화 후반부 밤새 온갖 고초를 겪고 모든 것을 벗어던진 그녀가 주위 시선 따윈 아랑곳 않고 으리으리한 저택 현관 계단에 앉아 담배 하나를 태우는 장면에서 '진짜 그레이스'로 돌아왔음이 느껴졌다. 영화는 그녀를 특별히 좋거나 나쁘게 묘사하려고 애써 부연 설명을 하지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 돈 많은 남자 만나서 팔자 피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 풀렸네? 하지만 어쨌든 살아남았으니 다행이지 뭐..." 그녀는 정의 사도도 불쌍한 피해자도 뭣도 아니다. 그냥 그레이스가 그레이스 했을 뿐이다. 그런 점을 담백하게 담아낸 이 영화,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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