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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죽기 전에 보면 좋은 영화

디파이언스(2008)_어찌 되었든, 살아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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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8월. 독소전쟁 발발 후 나치 독일군은 빠르게 폴란드를 점령해갔고,

그곳의 유대인들은 게토로 끌려가 학살되었다.

투비아 비엘스키(Tuvia Bielski)와 그의 형제 주스, 아사엘, 아론의 부모 또한 수용소에서 죽음을 맞게 된다. 투비아는 형제들을 데리고 가까스로 수용소를 탈출해 날리보키 숲(Naliboki forest)으로 이동, 그곳에서 형제들과 파르티잔('빨치산'으로 불리기도 함) 활동을 시작한다. 

 


 

이 영화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를 떠올리게 한다. 나치 점령하에 고통받는 유태인의 모습을 조명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각 영화의 주인공들의 삶의 방식이 꽤나 유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영화 <피아니스트>의 주인공 슈필만은 영화 내내 독일군에 쫓기고, 학살을 피해 도망치고, 누가 자신을 찾아낼까 두려움에 떤다. 그리고 결국 살아남는다. 이 영화 <디파이언스>의 주인공 투비아 비엘스키의 사정 또한 마찬가지. 나치 치하에 갖은 고초를 겪지만 결국 살아남는다. 두 인물의 행보에 대한 전체적 인상은 비슷하지만 그 온도는 사뭇 다르다. <피아니스트>가 '슈필만'이라는 하나의 인물로 유태인의 삶을 이야기했다면 <디파이언스>는 여러명의 '슈필만'으로 이야기하며 전쟁통의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여준다.

 

(좌: <피아니스트> 우: <디파이언스> / 출처: www.imdb.com)

 


"반드시 복수하겠어!" vs "복수는 됐고 일단 살아남자"

 

영화 초반의 큰 화두는 자신들의 부모를 살해한 이들(나치 독일군과 그들의 협력자들)에 대한 복수인가, 아니면 복수보다는 어떻게든 오랫동안 살아남는 것이 중요한 것인가에 대한 갈등으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굳이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기보다는 복수를 선택한 인물(주스)과 오래 살아남는 것을 선택한 인물(투비아)의 모습을 묵묵히 관찰하듯 보여주며 스크린 너머로 질문을 던진다. 

 

(이미지 출처: www.imdb.com)

 


"정말 못해먹겠네..."

 

직접적으로 표출되지 않았지만 주인공 투비아가 마음속으로 내내 품고 있지 않았을까 싶은 말이다.

4형제로 시작된 숲 속 생활은 수십, 수백이 되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었다. 투비아는 그들의 우두머리로서 이상과 현실을 조율하며 이 생활을 유지해야만 한다. 리더가 그렇듯 잘되면 당연한거고 잘 안되면 모두 리더의 무능력 탓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주인공 투비아의 '작은 성장기'로 느껴지기도 한다. 극 초반에는 자신과 상반된 호전적인 동생 주스와의 대립, 후반에는 자신의 지시에 반기를 드는 무리들과 마주하며 끊임없이 리더로서의 역량을 시험받는다. 

 

(이미지 출처: www.imdb.com)


"유태인이기 이전에 인간이다"

 

영화 후반부, 한 독일군 병사가 생포되어 숲 속 캠프로 끌려온다. 모든 이들의 관심은 곧 분노가 되어 한 사람에게 쏟아진다. 금방이라도 병사를 죽일 듯 둥글게 에워싸고 욕을 하고 침을 뱉는 군중들과 알아들을 수 없는 독일어로 살려달라고 고 애원하는 병사. 무리 중 하나가 이들을 저지하고 병사를 살려줬으면 하는 듯 투비아를 애타게 부르지만, 그는 그저 모든 선택을 군중에게 맡겨버린다. 리더로서 집단의 결속을 위한 선택이었을까, 아니면 한 명의 가족이 희생된 유태인으로서의 분노였을까?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속 대부분의 유태인은 잔인한 힘 앞에서 무릎 꿇는 초식동물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그렇다 보니 유태인에 대한 이미지가 '평화를 사랑하는 불우한 민족'에 가깝게 형성되었다. 역사적 사실이 그렇다는 것은 둘째치고, 이 장면이 신선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유태인은 이렇다는 전형적인 틀에 맞추어 관객이 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혼란한 당시 시대 속에서 과연 이런 상황이라면 어떤 감정이 표출될까에 세심한 고민을 했기 때문이다. 이름도 모르는 한 독일 병사에게 온갖 분노를 쏟아내는 그들의 모습은 유태인이라기보다는 한 인간으로 보였다. 기존의 고정된 유태인의 이미지를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 것이 흥미로웠다. 

 

(이미지 출처: www.aceshowbiz.com)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넘쳐나는 2차 대전사에서 상대적으로 사소하게 치부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을 파고들어 메인스트림에 끌어 올리려는 시도가 신선했다. 한국 영화에 비유하자면 <봉오동 전투> 정도가 될 수 있을까?

'너가 나를 때렸기 때문에 나도 너를 때릴거야'식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말하는 전쟁 영화에 질렸다면 잠시 이 영화에 눈을 돌려 영화가 던지는 이런저런 질문들에 대한 고민을 해보시길 추천한다.

(이미지 출처: www.imd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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